팝가수 마돈나(Madonna)는 1990년 11월 첫 히트곡집 The Immaculate Collection을 발매하는 것으로 1980년대 전성기를 마감했다. 80년대 댄스팝 데뷔 앨범 ‘Madonna’부터 마돈나 신드롬을 일으킨 2집 ‘Like Avirgin’, 발라드와 라틴팝 등 다양한 사운드를 담은 3집 ‘True Blue’, 파격적인 주제와 콘셉트로 화제를 모은 4집 ‘Like Aprayer’까지 4연속 흥행과 평가로 마음껏 성공 질주한 마돈나는 히트곡 15곡과 신곡 2곡을 모아 선보인 컴필레이션 앨범 ‘The Imaculate Collection’으로 미국에서 1000만장, 월드와이드 3,000만장 이상의 여왕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자랑했다. 서른 살이 넘은 마돈나가 새로운 90년대를 맞아 ‘팝 황제’ 마이클 잭슨과 손잡고 변함없는 인기를 누릴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90년대를 시작하는 마돈나의 첫 앨범은 1992년 10월 발매된 5집 Erotica였다. 춘화라는 제목과 독특한 표정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표지로 기대할 수 있는 ‘Erotica’는 흥이 오른 농염한 30대 중반 여성의 성과 사랑, 로맨스를 담은 형형색색의 음악이었다. ‘Erotica’ 발매와 동시에 발매한 누드 사진집 ‘Sex’는 선정적인 소프트코어 포르노에 가까운 수준 높은 사진과 변태적인 욕망을 주제로 한 콘셉트 사진으로 큰 논란을 빚으며 판매에 성공했다. Mtv 심야시간대를 겨냥한 야한 뮤직비디오로 가득 찬 싱글 ‘Erotica, Deeper and Deeper’가 히트했지만 8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는 보릿고개를 겪으며 미국 판매 200만장, 월드와이드 600만장에 그치는 실패작으로 남았다.
90년대 들어 모든 음악 장르에서 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아티스트들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물갈이 현상이 나타났다. 최고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을 들고 나온 ‘Dangerous’로 순조로운 출발을 하는 듯 보였지만, 곧 터진 아동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는 불운을 겪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함께 58년 개띠 삼총사로 활약한 프린스는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제대로 된 앨범을 발매하지 못해 아쉬운 재능을 썩히는 상황이었다. 성적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대담한 여성상을 들고 나와 발정한 암캐처럼 이리저리 떠들어대던 마돈나를 미국 대중은 외면하고 있었다.
닐바나 펄잼 같은 시애틀 그랜지밴드를 앞세운 얼터너티브 록 열풍과 함께 90년대 들어 확 달라진 변화 중 하나는 80년대를 풍미한 댄스팝의 퇴조와 흥겨운 흑인 음악 뉴 잭 스윙의 유행, 힙합 등장, 노래 잘하는 디바(Diva)형 가수의 등장으로 꼽힌다. 특별한 리듬이나 퍼포먼스 없이 무대 위에 서서 나는 가수다 마이크 잡고 부르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창력 최고의 가수들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등장해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동료 가수들도 굳이 접근하기 어려운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발휘한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같은 디바들은 마돈나, 신디 로퍼 같은 댄스 가수들이 설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재닛 잭슨과 신성 트리오 TLC는 흑인 음악의 유행과 R&B 인기 흐름을 탄 경우였다.
과거와 같은 인기와 지위를 누리지 못했던 마돈나는 1993년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 육체의 증거(Body of Evidence)에서 본격적인 에로 배우(?)로 변신해 스크린 흥행을 노렸다. 할리우드의 유명 거물급 배우 윌럼 데포와 함께 파격적인 ‘촛불 베드신’을 선보이며 온몸을 불태웠지만 박스오피스 흥행은 폭망하며 최악의 어리석은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슈퍼스타 마돈나가 등장한다고 해도 ‘육체의 증거’는 샤론 스톤 주연, 손에서 땀을 흘리는 송곳 스릴러 ‘원초적 본능’을 커버한 아류작에 불과했다.
인기글
커리어 위기를 맞은 마돈나는 1994년 3월 영화 ‘하버드 졸업반(With Honors)’ 사운드트랙에 잔잔한 발라드 곡 Ill Rember로 참여해 방향 전환의 물꼬를 텄다. 90년대 청춘스타 브랜든 프레이저 패트릭 뎀시와 약국의 감초 같은 연기를 자랑하는 조 페시가 주연한 ‘하버드 졸업반’은 명문대생과 노숙인 간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싱글로 발매된 아이올램버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하며 마돈나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마돈나의 6집 Bedtime Stories는 1994년 10월 발매됐다. ‘Erotica’와 같은 형형색색의 이미지는 없지만 이번에는 마웨스트(MaeWest)와 같은 고전 금발 미녀 콘셉트를 내걸고 하늘하늘한 슬립 속옷을 입고 등장했다. 얼터너티브 록( , )을 연상시키는 기타 반주와 중독적 리듬으로 포문을 여는 첫 싱글 Secret은 팝과 R&B를 접합한 곡으로 더 이상 방탕한 거리의 창부처럼 침을 흘리며 돌아다니는 시대는 없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속옷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출을 즐기는 행동을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시크릿은 빌보드 핫100 차트 3위를 기록하며 마돈나 음악으로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Bedtime Stories’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Take a Bow는 가수로서 마돈나의 수명을 10년은 늘려준 고마운 노래였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처연한 발라드 곡으로 듣기만 해도 듣기 좋은 노래였다. 정체기에 접어든 마돈나가 그토록 원했던 커리어 전환점을 상징하는 히트곡이었다. 절정의 기량을 뽐낸 싱어송라이터 베이비페이스가 참여한 보컬도 곡의 분위기를 살렸다.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귀부인으로 등장해 스페인 소싸움 경기를 관람하며 투우사와 애틋한 사랑에 빠지는 뮤직비디오는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야한 비디오(?) 장면이 피 끓는 몽정기 청춘들을 자극해 인기를 끌었다. Take a Bow는 1994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며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7주간 1위를 기록했고 다시 마돈나를 톱스타의 위치로 되돌려놓았다.
‘Bedtime Stories’가 미국에서 250만장, 월드 판매 800만장을 기록하면서 마돈나는 유럽에서 인기가 높아졌다. 돌파구를 연 마돈나는 이듬해인 1995년 11월 두 번째 히트곡집 ‘Something to Rember’를 발매한다. 무언가를 기억해 달라는 제목은 매일 밤 클럽을 돌아다니며 몸을 흔드는 나이트 죽순, 또는 섹스에 미친 발정녀로 각인된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자 만든 반어법이었을까. 표지부터 짧게 자른 짧은 머리에 새하얀 베르사체 브랜드 옷을 입고 나타나 그동안 해온 일을 후회하듯 벽을 치는 포즈를 취한 앨범 커버 ‘Something to Remember’는 마돈나 커리어의 대전환을 완성한 중요한 앨범이었다. 히트곡집이긴 했지만 1984년부터 1995년까지 발표한 곡 중 발라드 곡만 모은 구성이었다.
Take a Bow와 Liveto Tell 같은 앨범 수록곡 외에도 정규 앨범에 실리지 못한 Ill Rember, 톰 행크스와 지나 데이비스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한 야구 영화 ‘ALEague of Their On’ 테마곡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 숨겨진 보석 발라드 레인, 신곡 You’ll See, 마빈 게이곡을 리메이크한 I Want You가 70분 이상의 러닝타임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Something to Rember’는 노래 잘하는 가수로 마돈나의 재능을 앞세워 마돈나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똑똑한 콘셉트 앨범이었다. 미국에서 300만장, 유럽에서 300만장, 월드와이드 1000만장 판매를 기록하며 마돈나의 컴백을 알렸다. 이후 마돈나는 1996년 뮤지컬 영화 ‘에비타’ 출연과 뛰어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제2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펼칠 수 있었다. 마돈나는 일렉트로니카, 컨트리, 춤을 넘나들며 환갑이 넘도록 여전히 화려한 의상과 리듬, 노래로 무대를 꾸미는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